독도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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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2016.10.17

부채바위

부채바위

결과가 바뀔 수는 없지만, 기대치는 같은 결과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이를테면 낮은 기대치는 형편없는 결과를 그럭저럭 인정하고 참을 수 있게 합니다.

독도 입도를 준비하는 과정은 입도허가 등의 행정적인 절차 부터 끼니를 계산하고 적절한 식량을 챙기는 것 까지 생각하고 준비할 것이 소소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한 준비도 바다 날씨를 예측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저 “각오”라는 준비만 가능할 뿐입니다. 사흘치 양식으로 일주일을 버텨낼 각오… 뭐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서도의 주민 숙소를 이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 이번 일정의 컨셉은 동도에서 ’빌어먹기’입니다. 그야말로 빌어먹을 놈이 되는 셈입니다. 

빤히 계산되는 앞날을 불보듯 보고 있기에 한없이 낮은 기대치를 안고 독도로 향합니다.여객선의 안내방송이 나와도 부러 잠을 깨지 않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궁뎅이로 느껴지는 엔진음만으로도 접안여부를 알 수 있는데 무거운 눈까지 뜰 이유는…. 가뿐하게 접안에 성공합니다. 간만에 이장님도 나와계시고, 할머니도 좌판을 펼쳐놓았습니다.훤칠하게 잘 생긴 독도관리사무소 총각도 나와 있습니다.  등대 직원도 마실 나온 동네아저씨처럼 푸근한 모습으로 내려오셨네요. 스무살 적 꿈을 이뤘다면 저 아저씨 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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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근무하던 경비대원은 철수하고 다른 팀으로 얼굴이 바뀌었습니다. 또다시 낯선 대장님입니다. 인간관계 리부팅입니다. 상수와 변수. 이장님만 상수, 다른 분들은 모두 변수에 해당합니다. 모든 일은 사람에서 시작하듯, 도움을 받을 수도 내팽겨 쳐질 수도 있으므로 항상 인사부터 합니다.

독도경비대 아침운동

독도경비대 아침운동

벌레의 공격을 받은 경비대원

벌레의 공격을 받은 경비대원

120리터 배낭에 짐을 싸면서 넣었다 뺏다 했던 이유가 동도의 저 계단을 짊어지고 올라야 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계산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은 정말로 피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삭도에 짐을 실어 주시겠다는 은총이 내려졌습니다. 솜털같이 가벼운 DSLR카메라 두대만 매고 올라가면 됩니다. 어째 접안부터 일사천리로 풀려나갑니다. 게다가 아침 빛을 받은 해국은 최상의 컨디션입니다. 동도 능선을 이잡듯 꼼꼼하게 뒤져가면서 경비대 앞마당에 다다르니 막 점심입니다. 공사인부들 틈에 끼어서 첫번째 빌어먹기를 시작합니다. 내리 여섯끼를 라면으로 때울 각오였던지라 식판에 담긴 점심은 성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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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경비대 점심

야영을 가면 항상 숟가락을 보물처럼 챙기던, 아니 숟가락만 챙기던 선배가 있었더랬습니다. 시야에 밥이 들어오면 그냥 파고들어 퍼먹던…. 숟가락은 참 중요하다는 교훈으로 부터, 저는 근처에 물고기가 있을 만한 곳에 갈 때는 항상 날세운 칼을 챙깁니다. 생각보다 많이 생기는 상황이 있습니다. 생선은 있으나 칼잡이가 없는 상황.  눈앞에 그런 상황이 펼쳐집니다. 생선앞에서 쩔쩔매는 경비대 취사병.  일식주방장 어깨너머로 배운 근본없는 실력으로 아는 척을 합니다. 한 마리 해체가 미처 끝나기 전에 대원들의 눈빛이 이미 뜨끈합니다.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는 성현의 충고가 딱 들어맞는 순간입니다.

마치고 나오는 나에게 박카스 한 병을 쥐어주는 주방장의 눈길에서 정말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됩니다. 드디어 떳떳하게 빌어먹습니다. 숙소를 같이 쓰는 인부들이 애타게 구하던 초고추장을 제가 두둥 구해내는 초능력이 생겼습니다.

김영란법 이후로 댓가를 목적한 로비가 곤란해진 상황에서 저처럼 몸으로 떼우는 선의가 빛을 발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간사회에서 도움과 선의의 행동이 금전으로 환원되는 순간부터 애초의 뜻과 의도가 변질되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순수한 땀은 쉬이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동도 사면의 해국

동도 사면의 해국

해국

해국

해국

해국

질경이

질경이

괭이밥

괭이밥

번행초

번행초

술패랭이

술패랭이

박주가리

박주가리

10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독도는 만개한 해국으로 뒤덮힙니다. 토심이 깊고 기름진 땅의 해국은 매우 무성하고 꽃들은 꽃집의 꽃바구니처럼 풍성합니다. 바위틈에서 힘겹게 자라는 해국은 줄기가 마치 매화줄기처럼 억세고 꽃망울도 적지만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흙 한줌 없는 바위틈에 어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내는지 해국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해국이 지배하는 10월의 독도 사이사이에 때늦은 술패랭이와 방가지똥, 박주가리, 괭이풀 등이 간간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성도 이장님

김성도 이장님

이장님이 잡아오신 잿방어

이장님이 잡아오신 잿방어

김성도 이장님은 서도 시설물 공사탓에 한동안 비워둬야 했던 독도 앞바다를 신나게 돌아다니십니다. 아마도 몇마리 잡으셨겠죠. 이장님의 트롤링 낚시의 주요 대상어종은 부시리와 방어 등입니다. 머나먼 섬에서 먹는 생선회는 뭐든 맛나지만 우열을 가리자면 방어는 부시리에 미치지 못합니다. 외관상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 어종이라 받는 사람은 알 수가 없지만 주는 사람은 잘 알고 줍니다. 이번에는 부시리보다 더 맛난 잿방어 세마리를 주십니다. 육지에서는 아침부터 시작했던 비가 오후가 되자 독도에서도 내리기 시작하고 저는 잿방어 세마리를 요리합니다. 빌어먹는 처지의 한끼로는 제법 근사합니다.

낮은 기대치는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는 좋은 자세를 갖게 합니다. 최악에 대한 경험은 기대치를 낮춰 줍니다. 나쁜 상황의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름 경험이 쌓이고 보니 더 나쁠 수도 있는데 이정도면 좋다,라는 긍정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한편, 사진 속에는 렌즈 받대편의 형편이 담기지는 않습니다. 촬영자의 시선만이 남을 뿐 사진은 그 고단함과 땀냄새와 벌레의 공습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역경을 딛고 찬란한 결과를 이뤄내는 스토리에서 역경은 결과의 후광이 될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그 결과만 고스란히 남기고 관객은 그것만 읽을 뿐입니다.  자클린 뒤프레의 굳어가던 근육이 콜 니드라이 연주를 더욱 슬프게 만들어 버렸지만, 대부분의 결과들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형편이 결과에 기록되지는 않음을 알기에 스스로를 채찍질 할 뿐입니다.

이틀 뒤까지 독도를 향하는 모든 여객선은 접안에 성공할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해국만발한 독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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