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봉 원시림의 봄

25
2016

성인봉 원시림의 봄

독도

접안실패한 선라이즈 선내에서 바라본 독도

4월21일.

풍속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저동항 앞바다는 잔잔하기만 합니다. 예보에 따르면 독도 해상의 파고는 1~1.5m 바람은 남동풍 6~8m/sec. 독도가 가까워 지자 너울의 느낌이 옵니다. 여객선이 파도를 가를 때와 너울을 타고 넘을 때의 느낌은 다릅니다. 뱃전의 충격이 전해오는 것이 파도의 느낌이라면 너울은 배전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듯 바닥에 쿵 닿습니다. 멀미와의 상관관계를 따지자면 너울이 훨씬 심각합니다. 게다가 너울이 멀미만 유발하면 다행이겠지만 독도 접안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파도가 동도 접안지 낮은 부분에 물을 넘기면 접안은 불가능입니다. 동도 접안시설에 머뭇머뭇 다가서던 여객선은 제자리에 멈춘채 더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엔진음이 다릅니다. 배는 후진을 합니다. 접안실패. 사실, 선장이 접안할 의도로 다가서는 것과 접안하는 척 다가서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독도에 고립된 채 떠나가는 많은 배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던지라 저만 실망이 한템포 더 빨랐습니다. 뱃머리를 돌리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야 하는 허무감이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허무감으로 끝날 일이 아니기에 마음은 더 무겁습니다. 내일은 기상이 더 나빠지고 그 다음날 2차 시도 때도 좋지 않은 기상조건이라는 것을 알기에 답답합니다. 카메라 배낭과 120리터의 트렁크를 배에서 내리고 도동 언덕을 올라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쓰러집니다.

ulung15

4월22일.

오랜만에 성인봉을 오르기로 합니다. 우선 나리분지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성인봉을 넘어서 도동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코스를 잡습니다. 어떤 식물들이 꽃을 피웠을까 기대되기도 하지만 이번 일정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섬현호색 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버스를 갈아타고 기다리고 하느라 정오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오름을 시작합니다. 사진을 촬영하면서 하는 산행은 더디기 마련이라서 랜턴까지 준비하긴 했지만, 늦은 출발 탓에 마음이 바쁩니다. 나리분지에서 올려다 본 성인봉 북쪽 사면의 골짜기에는 아직 눈이 하얗게 남아 있습니다. 몇 번이나 비가 내렸음에도 저렇게 눈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겨울동안 얼마만큼의 눈이 쌓였었는지 상상이 됩니다.

입구부터 큰두루미가 숲속 바닥을 뒤덮고 우산고로쇠, 말오줌나무가 새싹을 뾰족뾰족 내밀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연두색의 조합에 눈이 부십니다. 신령수를 지나면 본격적인 나무계단 지옥이 시작됩니다. 왼쪽 사면에는 명이가 돋아나고 있습니다. 남획 때문에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올해는 어쩐일인지 상황이 나아 보입니다. 등산객 몇명이 섬말나리 새순을 한움큼씩 쥐고서는 명이나물이 맞는지 묻습니다. 한바탕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더니 그간 횡재했다고 잔뜩 부풀었을 기대가 급실망으로 바뀝니다. 이런 사람들이 털머위를 보고 환장하면서 쌈싸먹고 병원으로 실려가실 분들 같습니다. 사진 촬영하려 해도 만나기 힘든 산마늘이 그리 흔하고, 설마 곰취가 도동 골목골목에 까지 지천으로 덮히기야 하겠습니까.

섬현호색은 이미 열매를 맺었습니다. 열매가 떨어지지 않고 달려 있는 것으로 봐서는 어쩌면 때늦은 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뒤져보지만 이번에도 섬현호색 꽃은 보지 못합니다. 대신 한창때인 섬노루귀를 담습니다. 햇살의 각도가 많이 누웠습니다. 마음은 바빠지지만 사진을 위해서는 멋진 조명이 됩니다. 섬노루귀는 산짐승 이름과는 달리 정말 아름다운 식물입니다. 초록치마에 흰 모시저고리를 입은 최서희 같습니다. 나무에 미선이라는 이름도 붙이는데 섬노루귀는 서희라고 불러 마땅할 것 같습니다. 온 산 가득한 서희가 후광을 받으며 발목을 잡지만 이른 아침 독도행 2차 시도를 위해 하산을 서두릅니다.

4월23일.

밤새 숙소 창너머 말오줌나무를 뒤흔들던 바람이 예사롭지 않더니 그예 강풍주위보를 내리게 했습니다. 사동항에 모인 연구원들은 머쓱하게 발길을 되돌립니다. 마침 이아무개라는 친구가 오후에 요트를 타고 울릉도에  들를것이라고 전화가 와서 한숨 돌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흔한 재벌도 흔한 요트를 가진 친구도 제게는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러면 친구가 재벌이 되는 것도 괜찮겠지만, 흔한 친구는 흔하지 않게도 항암제를 맞고 말동무가 되어줄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친구가 요트 한 대 쯤 빌려줄 재벌이 되는 것 따위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같이 늙어갈 수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고는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똥이 되고 싶다며 주정하던 친구의 패기는 더이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배멀미하듯 위액을 넘겨내는 비다제의 부작용은 친구를 더 작게 만들 뿐입니다.  내가 요트대신 선물한 작은 낚시대로 작아진 저보다 더 큰 물고기를 낚아내면 잠시 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하지 않게도 얼른 완쾌해서 낚시대를 요트로 갚아줬으면 좋겠습니다.

ulung14

뫼제비꽃

 

ulung13

뫼제비꽃

 

ulung16

동백

 

ulung11

섬말나리(새순)

 

ulung5

섬노루귀

ulung8

섬노루귀

 

ulung4

섬벚나무

 

ulung7

우산고로쇠

ulung9

우산고로쇠

ulung3

당단풍나무

 

ulung1

너도밤나무 군락

 

ulung6

연령초

 

섬현호색(열매)

by :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