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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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15

10월 12일 독도

동도 접안 시설을 들이치는 파도

8일 부터 오늘 12일 까지 서도 주민숙소에는 10명의 외부인이 갇혀 있습니다. 경북대울릉도독도연구소4, 외주영상제작팀2, 발전기설치인부4.

독도에 처음 입도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들은 신기하고 새롭습니다. 저 멀리 반짝이는 바다와 숙소 뒤의 아득한 나무계단, 창만 열면 보이는 동도, 끝없는 파도소리….바닷속에는 먹을 것이 가득할 것 같은…. 정말 낭만적인 풍경입니다. 파도가 치기 전까지는 말이죠.

첫째날,

오후까지 여객선은 접안을 합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해 전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인부들은 들뜬 마음으로 소줏병을 엽니다. 육지에서 200km떨어진 곳에서 포도를 안주삼아 저녁노을을 배경삼아 기분좋게 취합니다. 저녁 상에는 갖가지 찬과 푸짐한 찌게가 곁들여 집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밥을 호기롭게 나눠줍니다. 새 밥을 지어먹을텐데 식은 밥은 그저 골칫거리일 뿐이죠.

둘째날,

파도가 제법 심합니다. 접안을 시도하던 여객선은 뱃머리를 돌리고 다음에 도착한 배는 접안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멀리서 섬주변을 선회합니다. 뭐 아직까지는 멀어져가는 배에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가 있습니다. 여전히 여유롭게 밥을 지어 남깁니다. 마실 술이 없을 뿐이지 아쉬운 것이 전혀 없습니다. 배도 부르고 할 일 없이 여유를 즐깁니다. 빠질 수 없는 고스톱이 등장합니다.

셋째날,

들어오기로 한 작업용 바지선이 오지 않습니다. 물론 파도는 훨씬 거세집니다. 낭만적인 독도 풍경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파도소리가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하고, 알코올의 부재가 불러온 짜증이 인부들의 얼굴에 가득합니다. 바지선에 실려진 부식이 들어오지 않자 식단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전날 먹던 찌게를 오늘 종일 먹게 됩니다. 물론 밥을 남길 일도 없어집니다.

넷째날,

무료함이 극에 달합니다. 한 명은 쓸데없이 쇠조각을 두드려 폈다가 하면서 뭔가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혼잣말로 욕을 해댑니다. 동도 능선 너머로 비치는 아름다운 햇살이고 나발이고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심심하고 술이 고프고 할일이 없는 이 시간들이 미치도록 싫을 뿐입니다. 매일 4시 부터 깨어나서 TV를 켜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할 일 없는 이 분들 때문에 저는 늘 잠이 부족합니다.

다섯째날,

아무도 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제 바다만 척 보면 ‘오늘은 글렀다’는 판단이 서게 된 겁니다. 인부들의 식량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제각각 라면을 끓이고 제각각 주머니에서 커피를 꺼내어 먹습니다. 항상 ‘내일’ 들어오기로 한 바지선에 많은 먹거리가 실려있지만 그 ‘내일’은 매번 뒤로 밀려납니다. 말끝마다 욕이 달라 붙습니다. 후렴구처럼 파도도 18파도, 바람도… 이럴 때는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 합니다. ^^

저희는 2박3일 일정으로 들어오면서 4일치의 식량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첫날부터 4일치를 최악의 6일치로 나눠서 매끼니 허기만 면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풍족한 시절 누군가 던져준 먹다남은 치킨의 살을 발라서 한 끼의 치킨 스프를 생각하며 냉장고에 넣어뒀습니다. 4끼분의 쌀과 약간의 김치, 햄…. 충분히 존엄을 지킬만한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있습니다. 무려 커피도 재고가 있고 말이죠.

무료함은 인류 진보의 동력이자, 정신붕괴의 원흉입니다. 현재 이곳 상황은 후자인것 같습니다.

단지 갇혀 있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영혼이 무너지는지를 시범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같이 지내는 저 분들에게 무료함은 배고픔보다 더 큰 고통같아 보입니다. 며칠 동안 발전기 설치장소인 식당벽을 허물려는 것을 겨우 말리고 있습니다. 벽을 일찍 허물고 나면 밥지을 공간이 없어지는데도 바지선을 기다리지 않고 벽부터 허물려는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무료함이 불러오는 엉뚱한 판단을 막기위해 기상정보를 이야기하지만 심심한 영혼이 어떤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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